차이를 웃음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일단 비교대상을 서로 재조적인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 또한 차이점의 내용 역시 최대한 뚜렷하고 명로하게 대조시켜야 한다. 단순히 '다르다'가 아니라 '180도로 다르다'는 것을 나름의 기주을 동원해서 그럴싸하게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예술'과 '외설'이라는 두 개의 비교대상이 있다고 하자. 주제의식이나 표현방식 같은 미학적 요소들은 작가나 평론가들이 규명할 일이지 유머리스트의 몫은 아니다. 유능한 유머리스느라면 '예술성'과 '음란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대신할 뭔가 색다른 기준을 찾아내야 한다.
먼저 예술의 특징을 찾아보자.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노골적인 성애장면이라도 작품의 흐름상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장면이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외설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단 '감독적이면 예술'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동적인 작품을 보고 나면 예외없이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영화는 TV에서 아무리 재탕을 해도 그 때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여기에서 '예술은 감동적이고 감동적이면 또 보고 싶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그러면 외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보자면 '감동적이지 않고 그저 야하기만 하면 외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처럼 관객들에게 그 작품을 다시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싶을 생각은 없어도 '중요한 장면'은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라도 야하고 자극적인 장면에 은근히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예술과 외설의 중요한 차이가 드러난다. 보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으면 예술이요, 몇몇 야한 장면만 다시 보고 싶으면 외설이라는 것이다. 예술평론의 관점에서는 당치도 않은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민초들이 듣기에는 괘 그럴듯하 비교법이다, '예술은 감동, 외설은 비감동'이라는 단순하고 밋밋한 설명에 비하면 참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명쾌한 차이점이 아닌가.
인물이나 직업의 특징으로부터 특정사안에 대한 사고방식과 태도의 차이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인물이나 학설 등을 주제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소재만 잡으면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로 여기에서도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과 그것을 적절히 재구성하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맹모삼천지교'로부터 '뛰는 엄마가 세 번 이살갈 동안 나는 엄마는 열번도 더 이사간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예술과 외설의 차이
<답> 예술: 다 보고 난 뒤 감동으로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외설: 다 보고 난 뒤 몇몇 주요 장면만 다시 보고 싶다.
<문>백만장자 발명가와 억만장자 발명가의 차이
<답>백만장자 : 동전 한 닢을 넣으면 마누라가 나오는 자판기를 발명.
억만장자 : 세계최초로 헌 마누라를 넣으면 동전 한 닢이 나오는 자판기를 발명.
<문>문명인과 식인종의 차이
<답>문명인 : 인구가 증가하면 식량을 걱정한다.
식인종 :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동일시한다.
<문>애처가의 좌우명 차이
<답>링컨형 : 마누라의, 마누라에 의한, 마누라를 위한 남편.
케네디형 : 마누라가 내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마누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한국형 : 나는 마누라를 위한 역사적 사명으리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문>불상을 보는 관점 차이
<답>감사원장 : "오른손으로는 거절하는 척 하면서 밑으로는 왼손을 내밀고 있군. 흔히 있는 일이지.
심리학자 : '왼손은 구하고 오른손은 가부하고...' 오! 인간심리의 영원한 모순이여!!!
씨름선수 : "왼손으로 샅바를 잡고 오른손으로 공격을 노리고 있군"
이를테면 '예술'과 '외설'이라는 두 개의 비교대상이 있다고 하자. 주제의식이나 표현방식 같은 미학적 요소들은 작가나 평론가들이 규명할 일이지 유머리스트의 몫은 아니다. 유능한 유머리스느라면 '예술성'과 '음란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대신할 뭔가 색다른 기준을 찾아내야 한다.
먼저 예술의 특징을 찾아보자.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노골적인 성애장면이라도 작품의 흐름상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장면이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외설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단 '감독적이면 예술'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동적인 작품을 보고 나면 예외없이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영화는 TV에서 아무리 재탕을 해도 그 때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여기에서 '예술은 감동적이고 감동적이면 또 보고 싶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성립한다.
그러면 외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보자면 '감동적이지 않고 그저 야하기만 하면 외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처럼 관객들에게 그 작품을 다시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싶을 생각은 없어도 '중요한 장면'은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라도 야하고 자극적인 장면에 은근히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예술과 외설의 중요한 차이가 드러난다. 보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으면 예술이요, 몇몇 야한 장면만 다시 보고 싶으면 외설이라는 것이다. 예술평론의 관점에서는 당치도 않은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민초들이 듣기에는 괘 그럴듯하 비교법이다, '예술은 감동, 외설은 비감동'이라는 단순하고 밋밋한 설명에 비하면 참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명쾌한 차이점이 아닌가.
인물이나 직업의 특징으로부터 특정사안에 대한 사고방식과 태도의 차이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인물이나 학설 등을 주제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소재만 잡으면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로 여기에서도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과 그것을 적절히 재구성하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맹모삼천지교'로부터 '뛰는 엄마가 세 번 이살갈 동안 나는 엄마는 열번도 더 이사간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예술과 외설의 차이
<답> 예술: 다 보고 난 뒤 감동으로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외설: 다 보고 난 뒤 몇몇 주요 장면만 다시 보고 싶다.
<문>백만장자 발명가와 억만장자 발명가의 차이
<답>백만장자 : 동전 한 닢을 넣으면 마누라가 나오는 자판기를 발명.
억만장자 : 세계최초로 헌 마누라를 넣으면 동전 한 닢이 나오는 자판기를 발명.
<문>문명인과 식인종의 차이
<답>문명인 : 인구가 증가하면 식량을 걱정한다.
식인종 :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동일시한다.
<문>애처가의 좌우명 차이
<답>링컨형 : 마누라의, 마누라에 의한, 마누라를 위한 남편.
케네디형 : 마누라가 내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마누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한국형 : 나는 마누라를 위한 역사적 사명으리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문>불상을 보는 관점 차이
<답>감사원장 : "오른손으로는 거절하는 척 하면서 밑으로는 왼손을 내밀고 있군. 흔히 있는 일이지.
심리학자 : '왼손은 구하고 오른손은 가부하고...' 오! 인간심리의 영원한 모순이여!!!
씨름선수 : "왼손으로 샅바를 잡고 오른손으로 공격을 노리고 있군"




덧글
니 2008/07/23 13:20 # 삭제 답글
<문> 이명박과 2mb의 차이점2mb : 바이러스에 거리면 치료하면 된다
이명박 : 약이 없다